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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가족과 함께한 남도여행 - 진도타워와 명랑대첩지

운림산방을 구경하고 나니까 벌써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낙지볶음과 피자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랐다. 오랜만에 낙지를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매웠다. 다음 여행지로는 진도대교에 가까운 진도타워와 이순신장군동상이다. 우리부부는 아들이 정한 스케줄에 따라 다녀서 편하긴 했다. 그러나 아들이 진도의 지리를 잘 몰라서 온길을 다시 갔다 왔다를 하다보니 시간을 만이 소비했다. 진도타워는 진도대교를 건너면 바로 왼쪽 야산에 있다. 진도타워에 오르면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진도대교을 한눈에 볼 수있다. 그리고 명랑대첩지로 갔다.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른 명랑대첩지인 울들목에 이순신 동상과 산책로가 있다. 그곳에서도 손자를 따라다니며 사진찍어주는 재미가 쏠쏠하..

국내여행 2020.11.21

막내아들가족과 함께한 남도여행 - 진도 운림산방

11월 초순에 광주에 살고 있는 막내아들로 부터 전화가 왔다. 진도에 있는 쏠비치콘도를 예약할테니까 같이 가자고 한다. 코로나19바이러스로 여행을 못하여 갑갑하던 소피아도 이번여행에 찬성을 하였다. 11월 13일 아침6시 40분발 srt를 타고 나주에서 만났다. 아들가족과 반갑게 조우를 하고 나주곰탕으로 유명한 하얀집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차를 몰아 진도에서 처음 찾은곳은 운림산방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봉이었던 소치 허련의 화실의 당호로 소허암 또는 운림각이라고 부른다. 스승인 추사 김정희로부터 소치(小痴)라는 아호를 받았다. 소치는 헌종과 독대하여 그림을 그리고 흥선대원군,민영익,신관호등과 교유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1857년 귀향하여 이곳에 운림산방을 세우..

국내여행 2020.11.20

추억이 희미한 나의 아버지

저의 할아버지는 원래 안성시 앙성면 남양홍가 집성촌에서 살았다. 우리아버지는 1914년에 그곳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이시고 양반행세를 하시는 할아버지께서는 풍수지리를 믿고 식솔을 데리고 대전시 유성구로 이주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볏단이 물에 떠내려가도 책만 읽으시는 생활력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한학자이셨다고 한다. 그러니 집은 쓸어져 가는 오두막이었고, 소작으로 끼니를 연명할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 집안의 5남1녀중 둘째아들이 나의 아버지 이다. 아버지는 학교을 다니지 않고 한학을 배우고 농사를 지었다. 아버지는 안성시 고삼면에서 죽산안씨의 2남3녀중 막내딸인 어머니와 1935년에 결혼하였다. 어머니의 친정은 먹는 걱정이 없이 사는 중농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의 아버지와 중농 집안의 어머니가 어떻..

가족이야기 2020.10.10

그리운 나의 어머니

자기 어머니가 소중하고 훌륭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 나의 일생의 좌표가 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지금도 내 머리솎에 꽉 차 있다. 나의 어머니의 힘들고 고단했던 삶을 잘알기때문에 나의 어머니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 그리고 그리움이 더 큰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요약 정리해 보았다. 가. 딸딸딸에 마음 고생이 많았던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딸을 많이 낳아 마음고생이 많으셨던 분이다. 어머니는 딸만 쭈루룩 낳을 때 죄인같았다고 했다. 할머니한테 구박도 많이 받았답니다. 1930-40년대에는 농촌에 의료시설이 없어 애를 낳으면 얼마안가 죽는 것이 다반사였단다. 어머니께서는 결혼 20년동안 딸5명에 아들 2명을 낳아서 아들 1과 ..

가족이야기 2020.10.10

내리 사랑

옛 어르신 말씀이 지금도 딱 들어맞는 것이 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 또 "내리사랑한다"이다. 요즈음 나이가 들면서 이들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말에는 부모가 어떻게 나은 자식이던가? 어떻게 키웠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자식들은 태어날때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고, 자라면서 공부하면서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식들은 부모에게 가장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잘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다 보니 자식들에게 양보하고 무엇이던지 끝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거기에 더하여 부모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점점 나약해지다 보니까 자식들과 의견이 달라도 그냥 져 주게 된다. 세상사의 옭고 그름을 따지기가 싫어지고 그냥 되는대로 살고 싶어진다. 나는 자식..

가족이야기 2020.10.07

퇴임사

책장의 서랍을 정리하다가 귀중한 자료를 발견했다. 평생직장이었던 농협에서 10여년전에 있었던 퇴임사이다. 수백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퇴임식이 열였는데, 제가 퇴임자들을 대표하여 퇴임사를 하는 영광을 갖았었다. 제가 한 퇴임사를 다시 음미하며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서 이곳에 옮겨 놓았다. 농협가족여러분 !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농협생활을 마치고 이제 정든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 원인이야 어떻든 이렇게 농협을 어렵게 만들고 후배님들께 고통과 어려움만 남기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겁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말없이 퇴임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존경하는 회장님께서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농협의 역사를 보면 과거에도 수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고 어려움에..

하고 싶은 말 2020.10.02

도심속의 고라니

코로나 19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확 바꾸어 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코로나 19로 여행이란 말자체를 잊고 살고 있다. 나이 70세가 넘으니 코로나19의 취약계층이라고 겁을 주니 외식도 거의 하지 못한다. 코로나가 심해진 3월이후에 버스는 물론 지하철을 타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고 있다. 갑갑함을 달래려고 가끔씩 드라이브겸 외식하러 근교로 나간다. 북한강변의 물의 정원 또는 양평에 있는 봄파머스가든에 들러 점심을 먹는 정도이다. 주로 집에만 있다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진다. 코로나19때문에 스포츠센터을 3월부터 못 가고 있어 집에서 멘손체조와 아령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다. 그리고 오후에는 소피아와 함께 집근처에 있는 양재천과 탄천의 산책길을 하루에 5~6km정..

하고 싶은 말 2020.10.02

한가위를 보내며

올해의 한가위는 예년의 한가위와는 완전이 다르게 다가왔다. 금년 2월에 중국 우한에서 들어온 코로나 19바이러스가 유구한 전통 한가위예절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집안은 남양홍가 익산군파 휴휴당 자손으로 뼈대있는 유학자 집안이다. 나의 유년기에만 해도 유교전통전례에 따라 제사 또는 차례를 지내왔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가 진전됨에 따라 농경시대에 정립된 한가위 명절의 전례와 의미를 온전이 간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집은 지방대신에 부모님사진을 놓고 홍동백서의 순으로 제물을 진열해 놓고 절을 하면서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하였다. 그리고 우리 아들가족들과 함께 차례음식을 먹으며 가족간의 사랑과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정부에서 실시하는 사회적 거리..

가족이야기 2020.10.01

산정호수와 백운계곡을 가다

고석정을 관광하고 그 근처에 있는 포천 산정호수로 가서 호수의 둘레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그리고 따끈한 차를 마시며 호수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백운계곡으로 갔으나 흐르는 물이 부족하고 사람이 없어 한적하였다. 드라이브하는 것 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저녁식사까지 해결하니 집에서 밥을 하지 않아 소피아가 무척 좋아한다. < 호수위에 떠있는 레스토랑에서 차를..

국내여행 2020.05.09

철원 고석정-직탕폭포- 삼부연폭포를 가다

신록의 5월이 지나가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올해가 무척 힘든 해 인가 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바이러스로 "사회적거리두기"를 하는 바람에 여행은 그만두더라도 외식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실정이다. 불행중 다행이 코로나 19가 많이 완화되면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규제가 많이 풀렸다. 그래서 오랜만에 여행을 떠났다. 철원 고석정->직탕폭포->삼부연폭포를 둘러보았다. 고석정은 한탄강 중류에10m높이로 우뚝솟은 고석암위에 신라 진평왕이 정자를 세운이후에 주변지역을 통털어 고석정이라고 한다. 원래 고석정은 바위꼭대기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실되고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그자리에 고석정을 다시 재현하지 않고 현재의 위치에 다시 건축하였다고 한다. 우리부부는 배를 타고 고석정 주변의 아름..

국내여행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