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등정기
우리나라의 유명한 백두산,한라산,설악산,계룡산,속리산,가야산,북한산등 높고 낮은 많은 산을 올라 가 보았다. 그러나 영산이라는 지리산에는 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가서 노고단까지 올라 간 것이 전부였다. 정상인 천왕봉까지 올라갈 기회가 없었다. 나이가 먹다보니 높은 산을 올라 간다는 것이 부담이 되어 천왕봉을 올라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걷기 쉬운 동네 야산이나 한강,탄천,양재천산책로를 주로 걷고 있다. 큰맘 먹고 지리산 숲길을 걸을때 만난 금계마을의 70대 농부와 대화를 하는 중에 자기는 1년에 한번씩 동네사람들과 같이 대청봉을 당일에 올라 갔다가 내려 온다는 것이다. 나도 늙기전에 올라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금년을 넘기지 않으려고 인월과 금계구간을 걷고 집에 오자마자 서들러 다음주중에 갈려고 장터목 대피소예약을 할려니 벌써 매진되었다.
마음이 급해진다. 금년을 넘기지 않아야겠는데 매진이라니 난감해진다. 대피소를 관리하는 지리산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다. 혹시 예약을 취소하는 자리가 있는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조회를 해 보았다. 이틀 후에 행운이 찾아왔다. 예약을 해지한 사람이 생겼다. 나는 재빨리 10월 26일을 예약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다음에 백무동행 버스표도 예약했다.
높은 산에 올라 가기위해 준비할 것이 많다. 우선 추위에 대비하여 옷과 손전등을 챙기고, 간식으로 빵과 떡, 양갱과 홍삼절편을 배낭에 담았다. 사진기도 준비했다.
26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동서울 터미널로 갔다. 역시 너무 일찍 도착하여 시간여유가 있다. 커피를 마시며 바삐 지나가는 군상을 본다. 아침 일찍 어디를 가는 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또한 월요일이라 그런지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쾌 많아 보인다.
버스가 8시 20분에 출발한다.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조금 지체된다. 고속도로에 접어 들면서 제 속도를 내며 달린다. 불거케 물든 산과 가을 거지를 서두르는 농부들이 스쳐 지나 간다.
어렸을 적에 학교를 다녀오자마자 논으로 가서 벼이삭 줍던 생각, 마른 논에서 우렁을 잡던 생각, 물고랑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생각 등 내가 살던 고향생각이 난다. 아쉽게도 나의 고향은 대덕연구단지에 편입되어 사라지고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함양,인월,마천을 거쳐 12시 경에 백무동 종점에 도착했다. 백무동은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하여 지리산의 북쪽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주요 요충지이다. 또한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용이해 많은 탐방객들이 지리산을 느끼러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안내서에는 백무동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총 5.8Km로 약 3시간 반 정도소요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등산을 하지 않아 능력을 알 수 없다. 장터목대피소까지 얼마나 걸릴지 걱정이 된다. 점심은 등산을 하다가 가지고 온 떡과 빵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백무동안내소를 출발하여 수십 미터를 올라가면 돌계단이 시작된다.양옆에는 여러종류의 나무들이 멋진 옷으로 갈아 입고 폼을 잡고 서 있다. 어떤 나무는 성질이 급한지 벌써 옷을 홀딱 벗었다. 어떤 나무는 빨강,노란옷을 입고, 또 어떤나무는 아직도 더운 여름에 입었던 푸른 옷을 입고 지나가는 등산객을 맞고 있다. 여러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을 뽐내고 있다.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 앞에 서 있는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이 바위의 이름이 하동바위이다. 하동바위에서 몇 백미터 올라 가면 해발 1125m지점에 있는 참샘이 나온다. 장터목까지는 아직 3.2km가 남았다. 장터목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마지막 샘이므로 꼭 물을 채워 가야한다. 참샘을 지나면 돌계단의 급경사길이 이어 진다. 밧줄이 급경사를 쥐고 올라가라고 나무에 묶여 있다.
혼자 산행에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출발하였는데, 등산객이 많고,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어서 있어 길동무도 하며 올라가니 즐겁기만 하다.
해발 1312m지점에 있는 소지봉표시판을 지나면 시누대가 길 양옆에 군락을 이룬다. 지리산등산로는 돌길아니면 돌계단이 많아 걷기가 힘들고 발이 아픈데, 여기는 흙길이다. 오랜만에 걷기 편안한 길을 걷는다. 마음도 편안하다. 이런 길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걷는다.
앞에 장병들이 무리지어 내려오고 있다. 검정색,갈색으로 얼굴을 위장하고,소총을 들고 가는 것을 보니 산악훈련중인가 보다. 격려를 보낸다. 올라가면서 주변을 보니 대부분의 나무들은 옷을 훌훌 벗어 던졌고 구상나무만이 여름에 입던 푸른 옷을 입고 고고하게 서 있다. 목적지가 가까이 오는가 보다.
장터목대피소가 보인다. 풍광이 갑자기 좋아진다. 카메라의 샤터를 자주 눌러 댄다.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4시20분이다. 약 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점심을 먹느냐고 소비한 시간을 감안하면 안내서에 나오는 3시간 반 정도면 올라 올 수 있겠다.
여장을 풀려고 장터목 대피소에 들어가서 등록을 하려고 하니 5시부터 입실이 가능하단다. 다시 나와 보니 벌써 여러명의 등산객이 와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담소를 하고 있다. 또 일부는 라면을 끓이거나 밥을 하고 있다. 나는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다. 맑은 하늘에 바위산, 푸른구상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아름다음을 연출한다. 장터목에서 멋진 노을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도 얻었다. 날씨가 좋아서 내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부푼다.
5시에 방을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고 준비해간 떡과 빵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옆자리에는 부산사람이며 혼자서 2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단다. 어제저녁에 잠을 못 잤다며 다리가 아파 파스를 뿌리고 일찍 취침한다. 또 한쪽은 모임에서 50-60대로 보이는 사람이 여럿이 함께 왔단다.
장터목대피소는 1997년에 다시 건축하여 총 150명이 이용할 수 있다. 장터목은 옛날 산청의 시천사람들과 함양의 마천사람들이 닷새에 한번씩 만나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였단다. 그래서 장터목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렇게 높은 고산지에서 시장이 열렸다니 옛날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에 천왕봉 일출을 볼려면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30분에는 출발해야 된단다. 10시에 모두 소등이 된다. 모포를 1장에 2,000원에 빌여 덮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잘 안 온다. 코를 고는 소리, 이야기하는 소리에 예민해저 있는 나는 2-3시간정도 설잠을 자고 더 이상 잠이 안 온다. 엎치락,뒷치락하다가 4시정도 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짖은 안개가 끼었다. 안개 때문에 일출을 볼 수 없을까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벌써 나와서 일행과 이야기하는 사람, 라면을 끓이는 사람도 있다.
새벽 5시30분경에 같이 숙박한 사람들이 줄을 이루며,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고 한발 한발 천왕봉을 향해 올라간다. 어둡고 안개가 짖게 끼어 주변을 전혀 볼 수 없다. 심한 경사에 설치한 바위계단, 철계단, 나무계단, 바위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는데 나뭇가지에서 안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정상에 가까워 질수록 바람이 세차게 분다. 드디어 1시간정도의 산행 끝에 해발 1950m 정상에 도착했다. 짖은 안개와 서있지 못할 정도의 세찬바람에 일출은 볼 수 없다. 기온도 떨어저 손이 시럽다.
처음 등정에 일출을 보겠다고 기대한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천왕봉 일출을 볼려면 3대에 걸처 덕을 쌓아야 한다지 않는가......
동행에게 부탁하여 천왕봉 표시판에서 증명사진을 찍고 10여분 기다리다 짙은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직전 세찬 바람에 내 모자가 낭떠러지로 날아가 버린다. 찾을 수가 없다.
나무에서 비 오듯 떨어지는 이슬로 머리가 다 젖지만, 모자를 산신께 바쳤다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날이 밝아지면서 안개속에서도 희미하게 풍광이 내 눈에 들어 온다. 이것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하니 자연의 위력이 대단함을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장터목대피소로 돌아 왔다. 여기서 준비해간 빵과 사과로 가볍게 아침을 때웠다.
백무동을 어제 올라온 길로 갈까 아니면 세석대피소를 거처 한신계곡쪽으로 돌아갈까를 생각하다가 지리산의 진면목을 더 많이 보고 싶어 졌다. 장터목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지리산 종주길이다. 종주길을 걸어 본다는 것도 의의가 있다.
장터목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돌길을 800m정도 가니 연하봉표시목이 나온다. 큰바위와 주목나무,고산나무에 안개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나에게 선사한다. 이 맛에 수많은 사람들이 힘들여 지리산을 찾는가 보다. 세석대피소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을 많이 마주 친다. 여기서 700m를 더 걸어 가니, 해발 1703m지점인 촛대봉이 나온다.
촛대봉을 감상하고 몇 발자국을 옮기니 촛대봉과 세석철쭉 이야기를적은 입간판이 있어서 읽어 보았다.
옛날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한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에게 오직 자식이 없다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어느 날 곰이 연진을 찾아와 세석고원에 음양수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마시며 산신령께 기도하면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연진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홀로 그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호랑이의 밀고로 대노한 산신령이 음양수 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에 가뒀다. 그리고 연진에게는 세석돌밭에서 평생동안 철쭉을 가꾸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그 후에 연진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 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해 속죄를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다. 한편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오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높은 절벽위의 바위에서 목메어 연진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한 꽃을 피우고, 촛대봉바위는 바로 연진이 굳어진 모습이라고 전해 온다.
세석평전은 넓은 면적에 낙엽이 떨어져 가지만 남은 철쭉군락과 푸르른 구상나무군락이 조화를 이루며 뿜어내는 아름다운 풍광 또한 멋지다. 철쭉이 피는 5월에는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자연관찰로를 걸어 내려오면 세석대피소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은 장터목대피소와 3.4km 떨어져 있으며 거림이 6km, 백무동이 6.5km거리에 있다. 쉬어 가기 위해 조금 떨어진 세석대피소로 내려 갔다. 이곳에도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식사를 하는 사람, 쉬는 사람들이 쾌 많다. 나는 준비해간 홍삼절편을 먹고, 물도 마시면서 쉬면서 사람구경을 했다.
백무동으로 하산하려면 다시 세석대피소갈림길로 올라와 한신계곡으로 내려 간다. 한신계곡길은 경사도가 매우 심하다. 길의 흔적이 없는 바위길이 많으며, 험한 길을 잡고 내려갈 밧줄도 없다. 비가 많이 올때는 이길로 물이 넘쳐 다니지 못할 것 같다. 세석대피소에서 3.6km,백무동에서 3km지점에 오층폭포가 있다. 흐르는 물이 적고, 떨어지는 물의 낙폭도 작다. 주변에는 낙엽이 지저분 할 정도로 흩어져 있다.
다시 300m를 걸어 내려가면 가내소가 나오다. 가내소는 옛날 마천면민들이 가뭄이 심하게 들면 이곳을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매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다. 그때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다.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도인은 “ 에이~,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라는 말을 남기고 이곳을 떠났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가네소 자연관찰로를 따라 700m을 내려가면 첫나들이폭포가 있다. 여기는 해발이 낮아 단풍이 아름답다. 길의 경사도 완만하여 행락객이 많으며, 계곡 주변의 넓은 바위에는 연인이 앉아서 한신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멋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서 산길을 내려 오니 백무동 종착지에 도착했다. 지금시각은 오후 2시 정도 되었다. 오늘 9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다. 배도 고프고 입도 쓰고 다리도 아프다. 근처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지리산 천왕봉 등정 사진모음)
< 백무동에 있는 지리산 안내도 >
< 철재다리 >
< 급경사의 돌계단과 밧줄 >
< 소지봉의 안내표시목 >
< 시누대의 오솔길 >
< 산악훈련중인 국군 장병 >
< 장터목 대피소 >
< 장터목 산장에서 바라본 노을 풍광 >
< 천왕봉 표지석 >
< 천왕봉 하산길에서 본 풍광 >
< 연하봉 근처에서 남쪽을 향해 짤깍 >
< 연하봉에서 오래간만에 기념사진 >
< 연하봉아래에서 의 남쪽 풍광 >
< 촛대봉의 위용 >
< 세석평전의 철쭉과 구상나무 >
< 세석대피소 >
< 오층폭포 >
< 아름답게 물든 단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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