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8)은 어제 비가와서 그런지 하늘이 맑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는 좋은 날씨이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덕수궁과
경희궁을 들러보는 고궁나들이에 나섰다.
덕수궁은 선조가 임진왜란때 피난을 갔다가 월산대군이 살던 집으로 돌와와서 정릉동행궁으로 삼으면서 궁궐로 사용
되었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정릉동행궁은 경운궁이라 칭하게 되었지만 왕이 살지 않는 궁으로 남았다.
그러나 조선 26대 왕인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서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들어 오면서 다시 왕이 머무는 궁궐이
되었다. 고종은 중화전을 비롯하여 정관헌,돈덕전,즉조당,석어당,경효전,준명전,흠문각,함년전,석조전등을 지속적으
로 지었다.
고종은 경운궁에 들어와서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서구문물을 적극 수용하였던 고종은 궁궐안에 여러 서양건축물을 세웠으며 전각내에 전기와 전화등 신문물을
설치하였다. 1897년 영친왕이 태어났고,헌종의 계비 명헌태후홍씨가 인수당에서 별세하였다. 또한 1907년 순종이
돈덕전에서 즉위하였다.
1907년 일제 강압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왕위를 물려 받은 순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 태상황이 된 고종은
계속 경운궁에 머무르게 되고 궁호를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고종은 1919년 승하할때까지 함녕전에서 지냈
다.
덕수궁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약 10년간 나라와 왕실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 대한문 >
- 1906년 중건공사를 하면서 정전의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대한문이라 칭하고 정문이 됨
< 덕수궁 조감도 >
< 중화문 >
< 중화전 >
- 1904년 화재뒤에 재건되면서 단층으로 건축된 정전
< 답도 >
- 답도는 궁궐의 중심 전각앞 계단 가운데를 장식하는 사각형돌 ---- 가마을 탄 왕이 그위로 지나가는 길
< 중화전 내부 >
< 즉조당일원 조감도 >
< 준명당 >
< 즉조당 >
- 즉조당과 석어당은 선조가 임시로 거처로 사용했을때부터 있던 유서깊은 공간
-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며,중화전이 지어진 후 편전으로 이용
< 석어당 >
- 석어당은 덕수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층전각
< 덕홍전으로 들어가는 문 >
< 덕홍전 >
- 외국사신을 접견할 목적으로 지어진 전각으로 외부는 한옥
< 덕홍전 내부 >
- 덕홍전의 내부는 서양식으로 장식됨
< 함녕전 >
- 고종의 편전이자 침전으로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고종이 승하
< 함녕전 내부 >
< 정관헌 >
- 러시아 건축가 사바탄이 설계한 것으로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독특한 외관이 특징
< 석조전 일원조감도 >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
< 석조전 >
- 석조전은 190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0년에 완성
-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로 접견실대식당등 공적인 공간과 황실가족의 생활공간을 갖춘 궁전
- 일제강점기이래 미술관등으로 사용되었으나 2009년부터 복원하여 2014년부터 대한제국역사관으로 사용중
< 중명전일원 조감도 >
< 중명전 전경 >
- 황제의 서재로지어졌으며,지어질 당시 덕수궁과의 사이에 미국공사관이 있어서 덕수궁의 담장 밖에 있는
별궁처럼 사용
- 1904년 덕수궁화재이후 편전으로 활용되었으며,
-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함
< 중면전내 전시실 >
< 덕수궁을 관람하고 점심식사를 한 맛집 >
< 남도식당 추어탕 >
- 중명전입구, 정동극장옆에 있는 추어탕 맛집
- 서대문에서 근무할때 자주 먹은 추어탕 맛집으로 점심때에는 항상 30여분 줄을 서야 먹을 수있었던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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