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5) 함박눈이 내려 온누리를 하야케 물들렸다. 눈이 내리면 내가 어렸을 적에 겪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눈이 내리는 날에는 제법 따뜻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며 하루 종일 놀았다. 저녁때가 되어 눈으로 옷이 젖은 채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께서는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한다고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때던 부주갱이로 나를 때리려고 쫓아오시곤 했었다. 그때 나는 쏜살같이 도망가서 어머니께서 화가 가라앉을 때쯤 슬그머니 들어가곤 했었던 일이 엊그제 같다.
지금은 눈이 오자마자 바로 녹아서 없어지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며칠씩 아니 겨울내내 온 천지가 하얗게 눈이 쌓여있을 때가 많았었다. 내가 살던 고향은 전형적인 농촌으로 초등학교가 집에서 근 4km 떨어져 있었다. 등하교할 때마다 우리 친구들은 한곳에 모여 책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강둑길을 거의 뛰어다녔다.
눈이 오고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친구들은 대나무로 만든 눈썰매를 타고 모였다. 동네어른들은 일렬로 썰매를 타고 학교를 가는 우리들을 보고 손을 흔들어 주시곤 했다. 우리들은 영웅이 된 것처럼 으스대며 신이 나서 더욱 빨리 달렸던 기억이 난다.
또한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토끼를 잡자며 배구코트를 가지고 우리를 산으로 데리고 가곤 했다. 선생님은 토끼가 다니는 길목에 배구코트로 그물을 치고 우리 학생들은 토끼모리를 하여 토끼를 잡았다. 토끼를 잡으면 선생님들의 회식 술안주로 헌납했다. 지금 수업시간에 토끼를 잡는다고 어린학생을 동원하면 어떻게 될까? 모름지기 학부형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그뿐인가 방과 후에는 새를 잡아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며칠씩 눈이 녹지 않으니 새들이 먹이를 찾아 집 가까이로 내려온다. 우리들은 볏짚으로 엮은 덫에 벼이삭을 미끼로 새를 잡아서 구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초가지붕의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사는 새의 집을 밤에 후라시로 비추며 손으로 새를 잡다가 구렁이를 만져 기절초풍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초가지붕이 스레트지붕으로 바뀌면서 밤에 손으로 새를 잡는 놀이가 사라졌다.
이것은 지붕개량이라는 명목으로 스레트지붕으로 고쳤지만 나에게는 개량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요사이 어린이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수학이다 영어다 피아노다 학원을 돌아다니느라고 눈이 내려도 우리가 경험한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하니 안타깝다. 이렇게 공부에만 매달리는 어린이가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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