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나들이 -2 : 창덕궁
오늘(5/18)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많지 않은 좋은 날씨다. 그래서 우리부부는 고궁나들이 2번째로 창덕궁을 찾
았다.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이궁이다. 이궁이란 전쟁이나 큰 재난으로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을 말한다.
1392년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 그리고 경복궁이라는 궁궐을 지었다.
태조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태조는 막내아들인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째
아들 방원은 사병을 이끌고 난을 일으켜 자신과 반대편에 선 형제인 방석과 방번 그리고 정도전을 제거하였다. 이것
이 1398년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인 것이다.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방원은 형 방과를 2대 왕 정종으로 임금 자리에 앉혔다. 왕위에 오른 정종은 다음 해에
형제들 사이에 벌어진 살인의 현장이 싫어 수도를 옛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으로 옮겼다. 왕위에 욕심이 없었던 정종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동생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3대 태종이 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면서 아버지가 수도로 삼았던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형제의 난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새로운 궁궐을 세우도록 했던 궁궐이 창덕궁이다..
1404년 10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불과 1년 뒤인 1405년 10월에 새 궁궐이 지어졌다. 창덕궁은 자연을 그대로 살려
궁궐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건물과 정원은 물론이고 작은 돌과 나무 한 그루까지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창덕궁은 임진왜란과 여러차례의 화재로 1804년에 재건한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 돈화문 >
-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에 건축했으나 소실되고 1609년 광해군에 의해 재건
< 입장권 >
- 65세 이상자는 무료입장
< 금천교 >
- 태종11년(1411)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흐르는 명당수위에 설치된 돌다리
< 다리 밑에 있는 부조 >
< 해태상을 배경으로 소피아 인증샷 >
< 외행각인 진선문 >
< 인정문과 외행각인석정문 >
< 인정문 회랑에 있는 청사 >
< 인정문 >
- 인정전의 정문이며 효종,현종,영조께서 즉위식을 거행했음
< 인정전 >
-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신하들의 하례,외국사신의 접견등 국가적 의식을 치루던 곳
- 태종5년(1405)에 창건했으나 몇차례 소실과 재건을 하였고 순조4년(1804)년에 복원한 건축물
< 정 3품으로 승진한 소피아 >
< 옥좌와 일월오봉도 병풍 >
< 인정전 천장 >
< 인정전에서 소피아 인증샷 >
< 선정전 >
- 1804년 재건한 건축물로 임금님이 국사를 보던 편전이었으나 조선후기에는 왕과 왕비의 신줄을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
- 창덕궁에서 유일한 청기와지붕
< 인정전 실내 >
< 희정당 >
- 희정당 초기에는 왕이 잠을 자던 곳이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사용
-일정시대 일본인이 복원에 참여하면서 건물의 규모와 형태가 변경되고양탄자와 유리문등이 도입됨
< 희정당 내부 >
< 대조전의 정문인 선평문 >
< 대조전 >
- 왕과 왕비의 침실과 왕자와 공주를 교육시키던 곳
- 1910년 한일합병을 결정한 어전회의가 열였던 비극적 역사의 현장
< 성정각 권역>
- 왕세자가 기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곳이었으나 1917년 창덕궁 대화재로 순종이 일시 피난처로 사용,일제강점기에는 내의원으로 사용
< 낙선재 >
< 궐내각사건물배치도 >
- 궁궐내 관청으로 왕과 왕족의 의료를 담당하는 약방과 왕의 칙령과 문서,경서,사적을 관리하는 옥당(홍문관)
규장각이 있음
< 도서관인 규장각 >
< 책고 >
< 억석문 >
<성정각 일원 >
< 내의원 >
< 내의원 약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