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3차 여행기( 제8코스-제14-1코스)
나에게 제주올레는 마약과 같다. 제주올레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3차 제주올레여행이 몹시 기다려졌다. 6월 8일에 예약한 제주행 비행기로 날아가서 3박 4일동안 8코스부터 14-1코스 까지 제주의 풍광과 문화를 접하고 왔다.
8코스중 지난번 올레길여행에서 시간상 중단한 중문 ․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로 가서 그곳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곳 중문단지내에 있는 해안공원길은 바다, 갯바위, 나무숲 그리고 조각품이 조화롭게 조성되어 있어서 관광객과 올레꾼의 발길이 잤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쪽에 웅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제주도와 섬들을 형상화한 빼어난 외관이 대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이다. 주변의 정원을 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겉모습과는 달리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한 기분이라 밖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해안길로 이어지던 올레길이 씨에스호텔의 경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길을 따라 들어가니 전통복장을 한 남자가 가야금을 타는 모습,전통혼례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의 모습등 한지공예작품이 야외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외국관광객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좋을 것 같다.
호텔을 나와 아스팔트길을 조금 지나면 조그마한 중문포구가 나온다. 제주에는 비가 올 때 하천이 넘치게 되면 배들이 휩쓸리기 때문에 하천의 하류에는 포구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중문포구만은 천재연하류인 베릿내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특징이 있다.
중문단지개발에 의해 없어질 뻔했던 중문포구는 지역어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살아남은 포구이다. 포구를 돌아보고 베릿내천의 징검다리를 지나 잘 정비된 자연생태공원의 산책로를 걸으며 베릿내오름의 절벽과 난대림이 연출하는 풍광을 감상하며 걸으니 행복감을 느낀다.
천재2교밑으로 걸어 가면 돌고래쑈를 하는 퍼시픽랜드가 나온다. 퍼시픽랜드는 돌고래와 바다사자의 환상적인 묘기를 관람할 수 있는 국제규모의 해양수족관이자 패밀리 레져쎈터이다. 건물의 겉모습과 정원을 둘러보고 해안쪽으로 가서 마린파크에 정착되어 있는 호화로운 요트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중문해수욕장으로 돌렸다.
오늘 6시 50분 비행기로 와서 9시 20분경부터 걷기 시작하였으니 배가 고파왔다. 중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에서 파도소리와 갯바람을 맞으며 오전 10시경에 1만원하는 전복죽으로 아침을 먹었다.
배도 부르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아 온 중문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중문해수욕장은 활처럼 굽은 긴 백사장과 하얀모래, 기암절벽과 푸른 숲이 조화를 이룬 세계적인 해수욕장이다. 모래밭 오른쪽에 있는 벼랑바위에 약 15m의 천연해식동굴이 하나있고, 그 뒤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있다.
또한 간조때에는 동편 어귀쪽에 물이 감도는 현상이 나타나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해안암벽을 따라 수천종의 희귀식물이 자생하여 생태관광 체험과 바다레프팅,수상스키,카약등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중문해수욕장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서울은 30도까지 올라가서 더웠지만 이곳 기온은 24도로 예보되었고 시원한 날씨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사장을 산책하는데, 일가족인 듯한 서양사람들이 비키니를 입고 바다속으로 들어가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라 추위에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백사장으로 내려가서 걸었다. 내가 족적을 남기면 바로 파도가 밀려와서 지우고, 나의 소망을 손가락으로 적으면 또 다시 파도가 밀려와서 지워버린다. 바람에 파도치며 밀려왔다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질 족적인 것을 남기려고 발버둥치는 위정자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친다.
여기저기에 여유만만하게 걷고 있는 올레꾼들이 보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
중문해수욕장 서쪽 숲 사이로 고개를 내민 나무계단을 따라 해안가 언덕위로 올라가면 영화 속의 감동적인 현장 “쉬리의 언덕”이 나온다.
영화속에서 본 세계 제일의 아름다운 관광지인 이곳은 가파른 언덕으로 중문해수욕장의 흰 모래밭을 활처럼 껴안은 해변의 끝자락에서 중문의 해안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바로 한국영화사를 다시 쓴 '쉬리'의 마지막 장면 촬영장소이다.
“쉬리의 언덕”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싱그러운 바다 내음과 시원한 해풍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운치 있게 펼쳐진 해안절경과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참동안 넋을 놓는다.
대나무 숲사이의 나무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굳모살해수욕장과 해안 절벽 그리고 절벽에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어지는 올레길, 색달해안의 갯깍주상절리대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검붉은 사각․육모꼴의 돌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이 수직으로 뻗어 있는 갯깍주상절리는 최대 높이 40m,폭 1km에 달하는 등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와 더불어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갯깍 동쪽은 해식동굴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그 길이가 약 25m로 주상절리 절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트여 있다. 용암이 흐르다 바다와 만나면서 생긴 존모살 해수욕장의 병풍바위 주상절리대는 탁트인 바다와 함께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해병대에서 주상절리대아래로 자갈을 깔아 길을 만들어 준 해병대길이 나온다. 그 덕택에 올레꾼들이 편안하게 주상절리대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걸을 수 있다.
아름다운 주상절리대해안길을 지나면 한국반딧불이연구회 지정 제1호인 반딧불이보호지역인 여래생태마을이 나온다. 환경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열리해안길을 계속 걸었다. 시멘트길중 일부를 할애하여 부드러운 길을 만들어 올레꾼을 배려한 것 같아서 고마웠다. 편안함도 잠시뿐이고 부드러운 길은 멈추고 다시 시멘트길을 걸어야 한다.
논짓물이 보인다.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서 섞이는 곳으로 여름에는 동내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더위를 식히는 명소이다.
열리큰코지를 향해 해안길을 걸으며 하늘을 처다보니 구름이 그리는 형상이 화가를 빰친다. 뭉개구름이 원을 만들어 내는 형상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 소나무터널길도 지나고 열리코지의 검은 기암괴석과 해안의 짓푸른 소나무가 연출하는 풍광을 감상하며 하예포구를 지나 대평포구가 보이는 해안길을 걸어 갔다. 바다는 슬픈사람을 위로해 주고 행복한 사람을 들뜨게 하는 매력이 있나 보다. 나의 마음이 들뜨고 있다.
박수기정을 멀리서 감상하며 8코스 종착점인 대평포구에 12시 20분에 도착했다. 대평포구의 벽화와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쉼터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 쉬었다. 자연만이 조각할 수 있는 박수기정과 하늘 그리고 푸른 바닷물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음에 걸어야 할 제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해수욕장까지 9.1km이다. 코스중에 맨 처음 반기는 곳이 박수기정이다. 제주에서는 벼랑을 기정이라 부른다.
박수기정은 안덕계곡의 맥을 이으며, 그 지세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월라봉 남쪽 해안과 접해있는 암벽지대이다. 지상 1m의 암반에서 1년 내내 샘물이 솟아나와 이물을 박아지로 마신다는 연유에서 이름이 박수이다. 특히 이 샘물은 피부에 좋다하여 백중날 물맞이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저녁이면 황홀한 노을을 감상할 수 있으며 해안은 갯바위 낙시터로도 유명하다.
박수기정을 오르려면 ‘조슨다리’로 가거나 ‘몰질’로 가야한다. 박수기정 바위를 할머니가 호미로 콕콕 쪼아 화순가는 지름길을 만들었다하여 조슨다리라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올렛길은 ‘몰질로 가야한다.
몰질은 말이 다니던 길로 고려시대 제주 서부지역에서 키운 말들을 대평포구에서 중국원나라로 싣고 가기위해 만든 길이었으나 수십년전에 사라졌던 길을 제주 올렛길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몰질을 오르며 길이 꺾일 때마다 보이는 풍광에 발걸음을 계속 멈춰야 했다. 한 구비 돌면 바다가 보이고 또 한 구비 돌면 한라산이 보인다. 모질은 경사가 높고 좁은 숲길로 이어져 있다. 올라 가면서 숨이차고,땅에서 열기가 올라와 금새 온 몸에 땀이 찬다. 그러나 오르막이 길지가 않아서 어렵지는 않았다.
박수기정위의 정상에 있는 평원은 아니지만 꽤 넓은 들녁이 눈에 들어 온다. 볼레낭길을 따라 걸어가면 유채밭,감자밭이 줄을 잇고 밭가장자리에 있는 나무에 핀 꽃, 들에 핀 야생화들이 내뿜는 꽃향기와 꽃을 찾는 나비들 그리고 참새,종달새등의 노래소리가 요란하다.
구제역때문에 우회하라는 푯말과 함께 올레길을 폐쇠하고 우회길로 안내되어 있다.
우회한 길은 주로 밭과 밭 그리고 산과 산을 연결하는 시멘트길이다. 가도 가도 산길이요, 어디라는 안내표시 하나 없다. 단지 올레길 시그널만 나부낀다. 시멘트길에 오르락 내리락하니 발도 아프고 은근히 걱정도 된다.
9코스 올레지기에게 전화를 하여 얼마나 돌아 가야하는지를 물으니 3km를 돌라가야 한단다. 이름을 모를 야산을 돌아가는 시멘트 산길과 아스팔트길을 단조롭게 걷고 시멘트길을 또 걸어 마을을 지나니 화순 앞바다가 보이고 발전소가 보인다. 아스팔트길과 마을 골목길을 걸어 화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구제역이 축산농가에만 피해를 주는 줄 알았는데 올레꾼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구제역 때문에 9코스의 백미인 안덕계곡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안덕계곡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계곡이다. 맑은 물이 암벽사이를 휘돌아 흘러 내려 치안치덕이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며 조면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과 함께 기슭에는 동백나무,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조록나무감탕나무,종가시나무등 3백여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난대림 원시림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단다. 다음에 제주여행을 할 때 꼭 가보고 싶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옮기니 9코스 종점인 화순선주협회사무실이다. 9코스는 짧고 구제역 때문에 제대로 풍광을 볼 수 없었다.
10코스는 화순선주협회사무실에서 하모체육공원까지 15km이다. 제주서남부 해안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화순해수욕장으로 가는길에서 서울에서 온 젊은 여성올레꾼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용머리해안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걸으며 아름다운 풍광에 공감을 표하며 걸었다.
화순해수욕장은 앞 바다에는 가파도,마라도,형제섬이 한눈에 보이고,뒷편에는 산방산이 버티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같은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여름에는 피서객이 몰려 온다고 한다.
용암이 흘러 바다와 만나서 만들어 낸 기암기석과 주상절리와 바다 그리고 해안가의 소나무숲길이 어우러져 비경을 만들어 낸다.
바위길과 자갈길 그리고 모래길을 걸으며 산방산의 깍가지른 절벽과 절벽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모래사장을 걷는다. 또한 연푸른 해초류가 자라는 넓은 바위해안을 걸으며 용머리의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사구언덕을 힘겹게 올라갔다.
사구언덕 관망대에서 온 길을 되돌아보니 가까이에는 산방산과 화순해수욕장, 발전소와 박수기정언덕이 보이고 멀리에는 한라산이 구름사이로 흐미하게 보인다. 이들이 푸른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바로 이런 비경을 눈으로 또 마음으로 느끼고 감동하고 환호하는 여유는 올레꾼이 갖는 행복일 것이다.
전망대에서 산방산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산방연대가 있다. 연대란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교통수단이었다. 산방연대는 최근에 개보수하였다. 산방연대서쪽을 바라보면 산방산과 산방사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산방산은 높이가 395m이다. 유동성이 적은 조면암질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종상화산(용암원정구)이다. 화구가 없고 사면경사가 50° 내외이며, 사방이 절벽을 이룬다.
신생대 제3기에 화산회층 및 화산사층을 뚫고 바다에서 분출하면서 서서히 융기하여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북쪽 사면 일대는 인위적인 식목림과 초지를 이루고 있다. 산정부근에는 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겨울딸기·생달나무 등 난대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유일한 섬회양목 자생지이기도 한단다.
암벽에는 지네발란·동백나무겨우살이·풍란·방기·석곡 등 해안성 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도라지가 서식하고 있다. 학술연구자원으로 매우 가치가 높아 1966년 천연기념물 제182-5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또한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이 산에는 옛날 한 포수가 한라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잘못해서 산신의 궁둥이를 활로 쏘자 산신이 노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산방산이 되고 뽑힌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여신 산방덕과 고승(高升)이란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이곳의 주관(州官)으로 있던 자가 산방덕의 미모를 탐내어 남편 고승에게 누명을 씌우고 야욕을 채우려 하다가 이를 알아차린 산방덕이 속세에 온 것을 한탄하면서 산방굴로 들어가 바윗돌로 변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 200m의 남서쪽 기슭에 있는 산방굴은 해식동굴로 부처를 모시고 있어 산방굴사라고도 하는데, 길이 10m, 너비 5m, 높이 5m 정도이다. 고려시대의 고승 혜일(蕙日)이 수도했다고 하며, 귀양왔던 추사 김정희가 즐겨 찾던 곳이다. 굴 내부 천장 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은 이 산을 지키는 여신 산방덕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 한다. 이물을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산의 남쪽에는 화산회층이 풍화된 독특한 경관의 용머리해안이 있다.
산방연대를 갔다가 되돌아 용머리쪽으로 내려 오다보면 중턱에 하멜의 상선표류기념비가 있고 용머리쪽에는 하멜상선전시관이 있어서 산방산, 산방사, 산방산굴사,용머리해안과 함께 주요관광코스여서 수학여행등 단체관광객이 많았다.
용머리해안은 수천만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 중 하나이다. 해안 절벽을 세찬 파도가 때려서 만들어 놓은 오묘한 해안 절경을 보는 순간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졌다.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날 훌륭한 형세임을 안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렸는데 이때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째 계속했다고 한다.
용머리는 CF와 영화의 촬영 장소로 이름 높은 곳이다. 길이 30~50m의 절벽이 마치 물결치듯 굽어져 있다. 이리저리 파인 모습도 장관이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바로 옆으로 길이 나 있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왔다는 해삼을 좌판에 내놓고 판다.
용머리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옮기면 사계포구가 나왔다. 자리물회를 먹어보고자 여러 식당을 돌아다녀 겨우 한식당에 찾아서 8000원을 주고 먹었다. 그 시간이 오후 4시이다.
오늘은 그만 걷고 싶었지만 일찍 숙소에 가서 할 일도 없고 해서 더 걷기로 하고 송악산으로 향해 사계해안체육공원을 걸어서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니 관광버스와 관광객이 여기 저기 많이 보인다. 이곳은 송악산과 마라도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다. 또한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는 인기연속극 “인생은 아름다워”의 찰영세트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찰영중이라 들어 갈수 없어서 먼발치에서 감상하고 송악산으로 향했다.
송악산은 그 모양새가 다른 화산들과는 달리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분화구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주봉의 높이가 겨우 104m지나지 않는 완만한 평원형태의 산이다. 사람들이 올라가서 산이 많이 훼손되니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러나 올레길은 올라가도록 되어 있어서 혼란스러웠지만 정상쪽으로 올라 갔다. 산의 대부분이 말 농장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산의 한가운데에는 푹 들어간 분화구였다.산능선을 따라 정성에 오르니 한라산,산방산, 긴 해안선 그리고 형제섬,가파도,최남단인 마라도, 대정쪽의 들판이 내 눈에 들어온다. 어느 카메라가 창조주가 만든 눈을 따라가겠는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로는 도저히 남아낼 수가 없다.
구제역 때문에 이곳 올레길도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우회로가 정확하지 않아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길을 훼멨다. 그러나 우회 덕분에 해안쪽으로 내려가 제주 서남부해안의 비경을 다시 보고 나무숲을 지나 대정하수처리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도 구재역 때문에 해안길대신에 아스팔트길을 한참 걸으니 발이 아파 온다. 대정하수처리장앞에 다다르니 6시 30분이다. 오늘 9시간이상을 걸었다. 사이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하여 픽업을 요청했다.
아침식사 포함된 숙박료 20000원을 지불하고 몸을 씻고 쉬다가 저녁에는 해물탕을 5000원에 시켜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식당 겸 카페인 2층에서 7시에 식사를 하고 커피를 시켜 마셨다. 커피값이 아침식사값과 같은 5000원이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이채롭다. 우선 볶은 커피콩을 갈아서 분말로 만든다. 물을 끊이고 온도계로 물의 온도를 체크하여 온도,물을 붓는 속도등 최상조건으로 커피를 우려낸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고, 정성을 들이던지 커피값이 아깝지가 않았다.
커피맛은 파리에 갔을 때 마셨던 맛과 비슷한 생각이다. 쓴 맛이 강하여 물을 더 타서 마셨다.
8시 30분에 어제 픽업한 장소로 태워 주기로 한 사장이 젊은 올레꾼들과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셔 못 일어났다. 9시에 모슬포항에서 가파도올레를 할려는 나의 일정도 차질이 생겨서 항의를 한 끝에 9시에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정하수처리장앞에서 내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침햇살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팔트길과 소나무 숲길을 걷고 하모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걷고 또 걸어 모슬포항에 도착했다. 먼저 카파도행 배편을 보니 11시에 있어서 1시간이상을 기다릴 수 없었다. 가파도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수협공판장에 가보니 낙찰 받은 갈치를 재포장하고 있었다.
다시 올레길로 돌아와 시내를 조금 걸으니 10코스 종점인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했다.
다음은 11코스인 하모체육공원에서 무릉생태학교까지 21.5km을 걸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대정 들판을 요리조리 꼬불꼬불나 있는 시멘트 농로을 어제 걸어온 10코스와 몇 백미터를 사이에 두고 지루하게 걸으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레길을 조정하면 축소하고도 풍광과 유적,문화를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불만을 바로 잃어 버리게 하는 풍광이 펼쳐진다. 밭에 핀 감자꽃,무꽃,브로컬리꽃,단호박꽃과 밭뚝에 핀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들로 꽃세상을 이루고 있다. 꽃이 있는 곳에는 나비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비들이 꿀을 찾아 여기저기 꽃을 찾는다.
길가 밭에서 감자를 캐는 농민에게 다가가 작황과 시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kg상자당 20000원이라니 금년 감자 생산농가는 돈좀 만져 볼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밭뚝에는 상품성이 떨어져 팔지 못하고 버린 감자가 널려있다. 밭에 두면 싹이 나서 다음 작물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흙에서 골라내서 버린 단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감자를 썩혀 맛있는 감자떡을 만들어 주시던 생각이 난다. 왜 저 많은 감자를 그냥 버릴까! 참 아깝다.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 흙먼지가 많이 날고 귀에서 휘파람소리가나니 바람을 앉고 가기가 힘들다. 제주를 3다도라 배웠지만, 바람과 돌이 많은 것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여자가 많다는 것은 옛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감자밭,마늘밭,무밭 그리고 이미 수확하여 흙만 남은 밭들을 지나 알뜨르비행장으로 다가갔다.
알뜨르 비행장은 1930년대에 일본이 송악산(宋岳山:84m) 아래 들판에 건설한 공군 비행장이다. 70만평방미터에 달하는 비행장에 핀 삐삐풀의 솜털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삐삐풀의 주대를 뽑아서 씹으면 달짝지근하여 많이 뽑아 먹었던 어렸을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 살아 난다.
비행장 주변에는 일제말기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비행장을 비롯하여 전투기격납고,탄약고,동굴진지,포대,참호,고사포진지,훈련장,감시초소,대피소,특공대기지등 일제의 만행을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국을 만들어야 하겠다.
또 밭길을 계속 걷다보면 6.25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치안국의 지침에 의해 7월 16일 유치장 수용자등 210여명을 법적 절차없이 집단 학살하여 암매장한 비극의 현장인 섯알오름 학살터와 추모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둘러 보면서 앞으로는 이를 교훈삼아 이런 비극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섯알오름의 정상을 올라가니 산방산과 송악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고 섯알오름을 내려 와서 밭길을 걸으면 20여개의 격납고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중 올레길에 가까운 격납고을 가서 보니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이며, 훈련기인 잠자리비행기(아카톰보, Akatombo)를 숨겨두었었다고 한다.
밭길과 숲길을 지나면서 마늘쫑을 뽑지 않은 마늘밭을 보았다. 마늘씨앗인 주아을 얻기 위한 것 같다. 주아재배를 하면 마늘이 커지고 좋으나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 대부분의 농가는 마늘쪽으로 심는다.
11코스에서는 식당이 거의 없기 때문 상모2리에 도착하여 식당부터 찾았다. 흑돼지전문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하여 먹었는데, 흑돼지고기라 그런지 육질이 쫄깃하고 국물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모슬봉을 향해 마을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제비가 날아간다. 까치 새끼로 착각할 정도로 오랜만에 제비를 보니 참 반갑다. “까치야 박씨 좀 물어다 다오”하고 소리를 질러 보았다. 여행자의 자유아닌가...
흙길,시멘트길,아스팔트길을 번갈아 걸으며 시범적으로 재배하는 딸기하우스도 가보고 바람에 의해 북쪽 방향으로 휘어져 크고 있는 나무숲도 들려 쉬기도 했다.
모슬봉을 올라가는 초입부터 묘지가 좌우로 늘어져 있다. 또한 정상에는 군시설이 있어서 7부 능선을 돌아 내려 올려니 여기도 묘지뿐이다. 은근히 약이 올랐다. 힘들게 오름을 올라가서 공동묘지를 보라고 올레길을 내었나.......
불만을 접고 내려와서 시멘트 농로길을 2km 정도 걸으니 정난주 마리아 묘지에 도착했다. 정난주 마리아는 1773년에 정약현과 경주이씨사이에서 태어났다. 당대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의 조카이며 천주교 신안의 성조인 이벽이 외삼촌이다. 친가와 외가가 모두 천주교집안이라 어려서부터 독실한 교인이었다. 황사영(黃嗣永)과 결혼한 그녀는 1800년에 아들 경한를 출산하였다.
남편 황사영은 17세에 장원급제하여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신유박해의 실상을 기술한 백서를 북경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발송하기 직전에 발각되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으로 순교했다. 그 결과 처인 정난주는 제주로,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정난주마리아는 제주에서 독실한 신앙생활과 올바른 생활로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경건한 마음이 든다.
또 다시 시멘트길과 아스팔트길을 걸어 신평리마을에 들어가서 길가의 나무그늘에서 마늘을 까는 아주머니에게 금년 마늘 작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늘 1kg에 2400~2800원했고, 밭때기는 1평당 8000원했다고 한다. 평년에는 1평당 8kg정도 생산했는데, 금년에는 날씨가 추워서 6kg정도 생산되었다고 한다. 금년에는 밭때기로 사들인 산지상인이 돈 좀 벌었을 것 같다.
커피도 내 주셔서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걸었다. 노부부가 아스팔트길에서 종자로 쓸 마늘을 말리고 있는데 물량이 꽤 많아서 몇평이나 재배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3000평을 재배하는데 종자값만도 천만원이 들어 간다고 한다. 이정도의 재배면적은 동내에서 중간정도라고 한다. 대정읍이 마늘 주산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보니 온 천지가 마늘밭이다.
올레 11코스는 농촌 마을과 들판 농로길을 걸으니 친근감도 있고 호기심도 발동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그러나 거의 전구간이 시멘트길에다가 태양볕을 쬐며 걸으니 더 힘겹고 지루하다.
노란 보리밭과 트럭터로 로타리치는 농부,감귤밭의 감귤열매,길가에 핀 난초꽃,이름모르는 꽃들을 보면서 걷다보니 신평-무릉간 곶자왈의 안내판이 보인다. 곶자알은 제주말로 나무와 넝쿨이 마구 엉클어진 곳을 말한다. 이곳의 곶자왈은 열대 북방한계식물과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이다. 제주올레에 의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우거진 숲속을 걸으면 시원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새소리도 들으며 걸으니 낭만과 여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영 아니다. 길을 잃을까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걷게 된다.
올렛길을 걸을 때는 단전호흡을 하듯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작은 돌, 풀 한포기, 나무,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유명 관광지처럼 안내판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친절하지 않다고 불평해서도 안 된다. 제주 올레길은 걸어가는 이들이 스스로 찾고 보고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올레길의 주변경관을 살피던 눈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게 한다.
곶자왈 숲길을 나오니 무릉2리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초입에 연못을 잘 가꾼 집과 정자나무 쉼터가 있다. 제주 전통대문과 돌담이 정감을 준다. 마을길과 아스팔트길을 걸으니 11코스 목적지인 무릉생태학교에 4시 30분 도착했다. 쉼터가 없는 코스,그늘이 없는 길,시멘트길,아스팔트길의 연속이었다. 걷기 힘든 길 이었다.
오늘 걷기는 끝내고 숙소로 들어 갔다. 폐교한 교실을 개조하여 숙소로 쓰고 있다. 숙박비는 13000원이고 제주올레패스포트를 소지한 사람은 10000원이었다. 제주올레패스포트 구입가격이 15000원이니까 숙박 며칠에 식사 몇 번의 할인으로 패스포트 값이 빠진다. 처음 시작할려면 패스포트를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방을 배정받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올레꾼들이 모여서 이야기중이다.부산에서 온 77세인 할머니,50대 남자,20대여자,20대총각 어제 같은숙소에 묵었던 대구에서 온 40대의 여자사진작가등이다. 이들과 올레길 정보를 주고 받았다. 숙박인원이 주말에는 많으나 평일에는 적다고 한다. 식당이 없어 밖에 나가 식사를 하는 불편이 있다. 아침은 토스트나 라면으로 해결해야 했다.
다음 일정이 같은 부산할머니가 새벽 5시에 같이 가자고 한다만, 그 시간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 약속은 못하고 일어나게 되면 같이 가겠다고하고 내 방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5시 15분이다. 불이 낫게 세수하고 옷 입고 5시 30분부터 12코스인 생태학교에서 용수포구의 절부암까지 17.6km을 걷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시골길을 한참동안 걸었다. 나무터널이 있는 아스팔트길도 걷고 시멘트 농로을 걸었다. 내가 지나 가니 꿩이 놀라서 푸두둑 날아가는 소리, 뻐꾹뻐꾹 울어대는 새소리가 시골 아침의 고요함을 깨운다. 한라산 북쪽 등선에서는 태양이 온 세상에 빛을 발산하며 눈부시게 떠오르고 있다.
보리를 수확한 밭에 태양의 빛이 반사되어 노란색을 더욱 진하게 발산하여 아름다운 교회가 보인다. 평지동 들녁을 걸으며 처음보는 꽃도 감상하고 단호박밭의 활짝 핀 꽃도 감상하며 도원연못에 도착했다.
도원연못은 신도리에 위치한 습지로 철새들이 날아와 겨울을 나는 곳이다. 운치있는 소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는 연못 둑방길을 걷다보면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모내기를 끝낸 논이 펼쳐졌다. 논에는 먹이를 찾아 흰 두루미 10여 마리가 어슬렁어슬렁거리고 있다. 논두렁을 걷고 다시 농로을 걸어 가는데, 이제야 마늘을 수확하느라고 여자농부들이 손을 바삐 놀리고 있다. 다른 밭에는 마늘을 수확하고 다른작목을 심어서 제법 푸릇푸릇한데,이제야 후확하는 것을 보니 산지수집상이 밭때기로 사놓은 밭인가 보다.
올레길이 녹남봉으로 이어졌다. 녹남봉은 해발 100m정도이며 원래는 녹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소나무숲으로 뒤덮혀 있다.소나무 숲길을 숨이 찰 정도 되면 정상이다. 정상에는 운동시설이 구비되어 있어 지역민들이 체력을 단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들녘을 보니 수확을 끝낸 가을처럼 누렇게 채색되어 있다. 마늘을 수확하고 아직 다른작물이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 한라산 봉우리와 앞으로 갈 수월봉과 당산봉이 눈에 들어 온다.
능선을 따라 소나무 숲길을 돌아 가면 원형분화구에 감귤원과 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까지 밭을 일궜으니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밭이 귀했고 부지런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녹남봉을 내려와서 신도1리로 향했다. 폐교한 학교를 활용하여 산경도예공방을 차려 도자기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순신장군과 거북선 그리고 책을 들고 있는 세종대왕동상이 좌우로 지키고 있다. 또한 반공소년 이승복의 동상도 보인다.
신도2리 마을골목길로 조금 걸어가니 “아시아 최초 메이저골프대회 우승”이라는 프랑카드가 걸려 있는 양용은프로의 생가를 만났다. 동네 아저씨께 양용은에 대해 물어보니 자기가 양용은을 업어주었다고 한다.집안은 양용은이 어렸으때에는 두부공장도 운영하여 부자였으나 공장이 잘되지 않아 가세가 기울었다고 했다. 양용은이 잘해서 영광이겠다고 하니 영광인지 모르겠단다. 불편한 심기를 보인다. 양용은이 고향에 대해 신경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고향에 대해 잘해야겠다....
오랜만에 신도리해안으로 가니 용암이 흘러 바다와 만나서 굳은 돌이 수천년동안 파도와 풍상을 맞으며 만들어 낸 기암기석이 정말 아름답다. 갯바위를 500m정도를 걸으며 자연이 빗은 아름다운 돌의 형상을 감상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비해 해안의 갯바위틈에는 팻트병,폐어망,스트로폴,대나무,각목,프라스틱상자등 쓰레기가 지저분하게 널려있어 보기가 안 좋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기를 바래보면서 해안길로 올라가니 돌로 탑을 세운 신도리 방사탑이 보인다.
방사탑은 마을 어느한 방위(方位)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상으로 허(虛)한 곳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으려고 세운 탑이다.
신도포구를 지나 밭길과 농로길을 걸어 수월봉으로 향했다. 수월봉 은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서 바다로 돌출한 해발 77m의 사화산이다. 맑은날 앞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면서 떨어지는 낙조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단다.
수월봉에는 수월과 녹고라는 두남매에 얽힌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수월이와 녹고 두 남매는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의좋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게 되자 특효약을 찾아 이곳 수월봉 절벽으로 왔다가 수월이가 힘에 부쳐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이 수월봉의 녹고물은 동생을 잃은 녹고의 눈물이라고 하며 예로부터 수월봉을 일컬어 '녹고물오름' 또는 '물나리오름'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수월봉에는 기상관측소와 상봉에는 6각정인 수월정이 세워져 있다. 이 수월정에 올라서 보면 눈앞에 차귀도가 들어오고 고산봉, 고산들, 당산봉 과 넓은 평야에는 마을과 밭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발산하고 있다.
아름다운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읽은 문구가 생각난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음에 감사하고, 파도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음에 감사하고, 감동과 여유를 느끼고 행복해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이 있음에 감사한다.
수월봉을 내려와 해안길로 접어들면 수월봉의 바다쪽 절벽이 보인다. 깎아지른 듯한 단애를 형성하여 북쪽 약 2km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은 '엉알'이라고 하는데 바위벼랑 곳곳에서는 샘물이 솟아나서 약수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월봉을 뒤로하고 해안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차귀도를 감상하다 보면 자구내포구가 나온다. 자구내포구에 있는 식당에서 10000원을 내고 성계국으로 9시경에 아침식사를 했다.
당산봉을 향해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당산봉은 해발 148m이다. 당산봉은 과거 차귀당이 있어 ‘당오름’이라고도 불리지만 보통은 당산봉으로 통한다. 당산봉 주변은 이름난 명승지와 볼거리로 가득하다. 북쪽은절부암으로 이름난 용수리 포구가 보이고, 남쪽은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남서쪽엔 전설어린 수월봉, 깎아지른 서쪽 벼랑 밑엔 차귀도와 자구내 포구 등 유명 관광지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비경들이다.
당산봉을 오르는데에는 제주의 다른 오름과 같이 크게 힘들지 않는다. 등에 땀이 날만하면 정상이다. 당산봉도 정성에는 전투경찰대가 자리잡고 있어 올라갈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다가 능선쪽으로 올라가면 차귀도와 푸른바다 그리고 풍차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일주도로변 밭모퉁이의 차귀당도 당산봉만의 이야기거리다. 차귀당은 원래 어엿한 당집이 있었는데 숙종 28년 목사 이형상이 섬안의 모든 당을 불태워 버렸을때 함께 없어졌다. 차귀당은 사귀신을 섬기는 당으로서 당집 곳곳에 뱀들이 서리어 있으며 제사때 나타나지 않는 것을 상서로이 생각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카메라에 담으려니 용량이 꽉 차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난감했지만 할 수없이 언덕에 앉자서 중복되는 사진과 잘못 찍은 사진을 삭제했다. 내일 찍을 것을 감안하여 60여장을 지울려니 가슴이 아프다.
산등성이를 내려와 생이기정바당길을 걸었다. 제주말로 생이는 새,기정은 벼랑,바당은 바다를 뜻한다.새가 살고 있는 절벽바닷길이다. 겨울철새의 낙원으로 가마우지,재갈매기,갈매기등이 서식한다고 한다. 다시 길을 걷다보면 성김대건신부의 제주표착기념관이 나오고 용수포구가 나타난다. 12코스 종착점인 절부암이다.
절부암은 고씨부인의 절개를 기리고 있는 바위이다. 조선 후기 이 마을의 어부 강사철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센 풍랑으로 변을 당하였다. 그의 처 고씨는 며칠동안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끝내 남편을 찾지 못하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소복을 입고 이곳 나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이 바위 밑에 떠올랐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중국 조아(曹娥:조간의 딸로 조간이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빠져 죽자 70일 동안을 아버지를 찾아 헤매었다. 시체를 찾지 못하자 조아도 강물에 몸을 던졌는데 5일만에 아버지 조간의 시체를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 한다)의 옛 일과 같다고 감탄하였다 한다.
이를 신통히 여긴 당시 판관 신재우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는 글귀를 새겨 후대에 기리게 하였다. 또한 관(官)에서는 이들 부부를 합장한 후 그 넋을 위로하고자 이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다음은 13코스인 절부암에서 저지리마을회관까지 15.3km구간이다. 용수리 마을길을 요리조리 구불구불 지나서 시멘트포장된 농로로 접어 들었다. 길가의 밭에는 기장과 밭벼를 재배하는 밭이 많이 보인다.
밭벼는 경제성이 없을 것인데 왜 재배할까, 기장은 어디에 쓰는 걸까, 농지값은 얼마일까등 의문을 품으면서 주변에 알아볼 농부를 찾았으나 농부가 보이지 않는다.
시멘트 농로을 거닐고 있느데 제주에서는 보기 힘든 습지가 나타났다. 습지에는 왕골같은 풀이 무성했으며 길 안쪽에는 흰 두루미떼가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사진을 한방 찍고 계속 걸어 용수저수지의 둑방을 올라섰다. 나보다 30분 앞서 출발한 부산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을 찾아가기 어렵다고 버스타고 생태학교로 돌아 갈려고 하던 참이란다.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저수지 뚝위를 걸어 저수지옆길로 계속 걸어가니 특전사 숲길이 나온다. 지역에 주둔하는 특전사 병사들이 숲길을 만들었다고 특전사숲길이라고 이름지었다. 소나무와 난대림이 무성하여 그늘속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참 좋았다. 거리가 10분 거리로 짧아 아쉬웠다.
특전사숲길을 나와 농로를 걷는데, 밭뚝에는 비닐태운 찌거기, 패트병등 쓰레기가 널려 있어 토양오염은 물론 지저분한 환경에 눈살이 찌프려 진다. 밭에는 기장, 마늘, 밭벼 감귤이 잘 자라고 있다.
밭에서 관수를 하고 있는 농민이 있어서 궁금했던 것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밭벼를 심는 것은 벼를 수확도 하지만 볏짚을 얻기위해 심는다고 한다. 풋마늘 때 볏짚을 덮어 보온을 하면 마늘생육에 좋단다. 또한가지는 기장의 용도인데,기장으로 밥도 해먹고,떡도 만들고,술도 만들 때 사용한단다. 그리고 농로옆의 밭은 평당 100000원정도하고 길과 접하지 않은 밭은 50000원 정도 한단다.
꼬불꼬불한 농로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령이 오래된 고목이 우거진 숲을 올레길로 내면서 고목숲길이라고 이름을 붙인 숲으로 들어갔다.
내가 지나가자 놀라서 푸드득 날아가는 새, 나를 반갑게 맞아주느라고
방긋 웃는 꽃,고사리가 군락을 이루는 흙길, 소나무가 무성한 산길들을 지났다.
하동숲길을 지나 감귤밭에 쉬어갈수 있는 의자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니 마음도 상쾌해 진다.
아홉굿마을에서 올레길 표시를 지나쳐 한참을 훼매다가 큰의자조형물이 있는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올레길을 찾았다.
아홉굿은 마을이 분지형인 동시에 토질이 점토질이어서 물이 잘 고이는 특성이 있다. 이로 인해 저갈물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흙을 채취하다 보니 물통이 여러곳에 형성되어 지금의 아홉굿 연못이 생겼다고 합니다.
전통태마마을로 지정되면서 천개의 의자를 만들어 마을과 주변거리에 의자를 놓았다. 의자는 앉을 새도 없이 무던히 달리기만한 이들에게 의자를 내밀어 농촌의 편안함과 넉넉함을 안겨주자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전통마을체험관에서 4,000원에 보리비빔밥을 시켜 맛있게 먹고 한참을 쉬었다.
체력을 보충하고 낙천마을의 잣길을 걷고, 숲길을 걸을 때 잡념에 늘어진 나뭇가지에 머리를 붙이쳐 아퍼하면서도 걷고 또 걷고를 반복했다. 칡넝쿨이 나무를 휘돌아 올라가고 있으니 그 나무는 숨 막혀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올레길옆에 수령이 360년이고,수고가 8m,나무둘레가 3m 되는 팽나무가 위풍당당히 서서 나그네를 품안에 안는다.
뒷동산 아리랑길을 걸었다. 오르막 시멘트길로 농로겸 임도로 이용될 것 같다. 한옆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빅켜빅켜라고 큰소리로 우는 새들이 이리저리로 날고 있다. 산중턱까지 공원묘지로 조성되어 있고 묘지는 잡풀로 범벅이다.
저지오름은 해발 239m이며,정상에는 깔때기모양의 “암매”라 부르는 굼부리가 있고, 오름주변 비탈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우거져 있다. 보리수나무와 찔레나무등이 우거져 있어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기 어렵다. 분화구 숲길690m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생달나무,산동나무,참느릅나무,백문동,후박나무등이 넝굴나무와 뒤엉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정상에는 전망대를 설치하여 제주서부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저지오름의 중턱에 있는 산책길을 돌아 저지리 마을로 내려 오면 저지리 마을회관이 있는데,이곳이 13코스의 종점이다.
오늘 12코스와 13코스를 돌아 총 32.9km을 걸었다. 오후 5시20분이니까 약 12시간을 걸었다. 발은 피곤해도 마음은 가볍다. 아이스크림을 3000원주고 2개 사서 동행한 아주머니와 같이 먹었다. 77세인 아주머니는 마지막 저지오름은 포기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단한 분이다. 나도 그 나이까지 건강하게 올레길을 걸을 수 있을까? 소망해본다.
버스를 타고 숙소인 무릉생태학교로 돌아 같다. 발에 물집이 생겨 바늘을 빌려 따고 소독을 했다.
금번 올레길의 마지막날의 날씨가 좋지 않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오늘일정은 14-1코스인 저지리 마을회관에서 무릉생태학교를 역방향으로 걷고 14코스는 비행기예약에 맞춰 시간이 되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5시에 기상하여 출발준비를 하는데 울산아주머니가 14-1코스를 같이 가자고 한다.
동행하기로 하고 6시에 우비를 입고 생태학교를 나섰다. 인향마을 연못까지는 11코스와 같은길을 걸었다. 연못에서 왼쪽으로 시그널을 보면서 올라가다 보니 문이 닫혔다. 새벽이라 문을 닫은 것 같아 월담하니 감귤농장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길이 없다. 돌아 나오는 길에 감귤나무를 보니 흰꽃이 피어 있다. 카메라에 감귤꽃을 담고 헛걸음한 것을 위안을 삼았다.
올레길은 대문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숲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숲속으로 들어가니 이른 아침이고 비가 와서 어둡고 축축하여 기분이 이상했다. 숲에는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있다. 숲속인데도 낮은 돌담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옛날에는 화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숲이 우거져 있지만 나무가 굵지 않고 대부분이 가늘다. 한사람이 간신이 지나갈 정도의 우거진 숲길을 한참 걸으니 비포장 도로인 임도나오고, 그 길을 오래 걸으니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길옆에는 수확한 보리밭이 육지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에 놀랐다.
그 유명한 오설록 녹차밭이 내눈에 들어 온다. 30분가까이 사진도 찍고 차밭을 거닐어 보기도 하면서 차밭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였다.올레길 시그널을 따라 차밭가운데로 난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길가에 활짝 핀 코스모스도 보고,차밭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차밭끝까지 거었다.
그런데 시그널이 없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되돌아 와서 아무리 찾아도 다음시그널이 없다. 할 수 없이 14-1의 올레지기에게 전화를 하여 길안내설명을 듣고도 길을 찾을 수 없다.
40여분동안을 돌고 돌아 길을 찾았다. 50m정도 가다가 유턴하여 우회전하여 기숙사쪽으로 올라가야했다. 그러나 유턴 시크널이 잘못 그려지고 기숙사쪽에 있는 시그널을 누군가가 훼손하였으니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차박물관 뒤쪽을 돌아 산속으로 올라가면 농물농장 숲길이 나온다. 숲길에는 동물의 똥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길가에서 3마리의 말을 만났다. 새끼말이 어미젓을 빨고 아비말이 옆에 지키고 있는 것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기분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흑돼지 3마리가 길을 막고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슬금슬금 숲속으로 사라 진다. 이곳은 곶자왈내에 말과 흑돼지를 방목하는 구간이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동물농장 숲길을 빠저나와 양옆에 나무숲이 우거진 임도을 걸어 저지곶자왈로 들어섰다. 저지곶자왈은 북쪽 한계지점에 자라는 열대북방한계식물과 남쪽한계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숲이란다. 특히 저지곶자왈은 월림-신평 곶자왈 지대중에서 가장 식생상태가 양호한 지역으로 녹나무,센달나무,생달나무후박나무등 녹나무과의 상록 활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제주올레가 한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너비로 덩굴을 잘라내고,울퉁불퉁한 돌을 평평하게 골라 만든 길을 걸었다.
문도지오름을 올라가기 위해 울창한 삼나무 숲길로 들어갔다. 해발 260m이니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올랐다. 넓은 곶자왈이 한 폭의 그림같다. 싱그럽고 상쾌하다. 제주오름에만 느낄수 있는 기분이 아닌가......
문지기오름은 초승달처럼 생긴 등성마루가 남북으로 길게 휘어진 말굽형 화국를 가지고 있다.삼나무 조림지와 경작지를 제외하고는 전사면이 억새로 덮여 있고 말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목적지인 저지리 마을이 보인다. 산길과 농로를 걸어 강정동산을 거쳐 마을로 들어섰다. 돌담길을 요리저리 꾸불꾸불 걸으며 제주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11시 40분에 저지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였다. 14-1코스 산길,숲길 17.5km을 완주했다.
동행한 울산아주머니는 작별인사를 하고 13코스로 향해 출발했다. 나는 14코스를 가지로 했다. 비가 계속 내리니 좀 쉬었다가 점식을 먹고 12시 30분에 출발하기 시작했다.
14코스는 저지마을회관에서 한림항 비양도 선착장까지 19.3km이다.
저지오름을 끼고 농로을 걸어 가서 아스팔트길을 한참 걸어가면 왼쪽방향으로 가게 된다. 농로를 걸어가다 보면 옥수수,배추,귤하우스, 야자수군락지도 나오고,수확을 앞둔 누런보리의 물결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큰소낭숲길은 큰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길인데,까시넝쿨이 많고 길이 좁아서 다리에 찔려 따끔따끔하다. 내 뒤에서 따라오는 서울아가씨는 짧은 옷을 입고 오고 있는데 다치지 않을 까 걱정된다. 까시덩쿨이 무성하니 이를 제거해야 올레길이 보전될 것 같다. 한농장의 비닐하우스에는 알로에가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농장에는 김정문엘로에와 계약재배를 하는 농장인가 보다. 판로 걱정없이 재배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은밀한의 뜻이 있는 오시록한 농로과 움푹패인지형을 뜻하는 굴렁진 숲길을 걸으며 뻐국새의 노래소리 “뻐꾹뻐꾹”에 맞춰 발걸음을 옮겨 나간다. 숲속의 돌길과 자갈길에서는 몸의 균형잡기가 어려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풍광을 즐기기가 어려웠다.
선인장밭둑을 걸으며 백년초가 연홍색을 띠고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가 아쉽다. 한번 따서 먹고 싶었지만 참고 사진을 담았다. 월령 숲길에서는 낙엽을 밟으며 걸으니 발이 고맙다고 신호를 보낸다. 계속 비를 맞으며 걸으니 등산화에 물이 들어와서 양말이 축축하게 젖고 물집을 짠 발꼬락이 아주 아프다.
그만 걷고 싶지만 교통이 안 좋으니 어쩔 수 없이 월령포구쪽으로 계속 걸었다. 월령포구로 가는 주변에는 선인장밭이 참 많다. 나무판으로잘 가꾼 월령해변길을 걸으면서도 선인장을 보고 백년초국수집간판도 걸려 있다. 이곳이 선인장 주산지인가 보다.
다리와 발이 아프지만 자꾸 욕심이 생긴다. 1시간만 참고 걸으면 완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다. 월령포구에서 몸을 추수리고 해안의 바위길와 자갈길을 천천히 걸어 금릉포구에 도착했고 또 욕심을 내서 협재해수욕장초입에 이르니 걸을 힘이 없고 다리와 발꼬락도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걷기를 중단했다. 나머지는 다음 올레에 걷기로 하고 버스를 타고 제주시로 와서 사우나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올레는 가을에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