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까치밥

hong-0925 2012. 11. 11. 21:22

 내가 어렸을 적에 살던 고향 집에는 고염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우리 집은 뒤에는 산으로 둘러싸고 앞에는 논이

펼쳐 저 있는 초가집 이였다. 따라서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이 되면 볏짚을 이어 지붕을 새로 이었다. 같은 시기에

다닥다닥 달린 고염을 따서 항아리에 넣어 보관했던 기억이 난다.

 고염은 한 겨울 긴긴밤 출출할 때 꺼내 먹었던 우리 집의 겨울 주전부리로는 최고였던 것 같다. 고염이 작고 육즙

이 적어 껍질에서 나는 떱드름한 맛과 육즙에서 나는 달콤한 맛이 어우러지는 묘한 맛을 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한참 일 때 초가집은 스레이트지붕으로 바뀌고, 고염나무는 감나무로 바뀌었다. “우리도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초가집을 기와지붕 또는 스레이트지붕으로 온 동네가 바뀌었다. 그리고 경제성이 낮은 나무는

경제성이 높은 나무로 교체하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우리 집 고염도 열매가 큰 감으로 접을 붙였다.

튼튼한 고염나무 뿌리에 감나무가 접목되니 몇 년 안 되어 큰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감을 따는 일은 우리 집의 유

일한 남자인 내가 매년 맡았는데, 장대로 감을 딸 때마다 우리 어머니는 높은 가지에 있는 감중에서 두 개내지 세 개

정도는 따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어머니께서는 까치가 와서 먹으며 기쁜소식이나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혼자말로

중얼거리셨지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감 세 개를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끼치는 까치를 괴롭히거나 함부

로 잡는 일을 금기시했다. 그뿐인가 “까치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 이래요”라는 동요로 표

현되어 널리 불리고 있다. 까치는 오지에서는 살지 않고, 사람이 사는 마을 주변에서 살아 사람들의 눈에 자주 띄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까치밥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 시대 농촌사람들은 까치뿐만 아니라 들짐승이 겨울을 나도록 농작물을 전부 수확하지 않고 일부를 남겨 놓는

넉넉함과 낭만이 있었다.

사실 까치는 잡식성으로 곤충은 물론 작은 새들도 잡아먹는 폭군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신주에 짓는 까치집으로

인해 정전피해가 막대하다고 한다. 한전에서는 전신주에 있는 까치집을 제거하는데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간다며

까치를 어떻게 퇴치할 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요즈음 농촌에서는 감을 한참 따고 있을 때인데 까치밥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하다. 까치에 대한 인식이 길조에서

해로운 조류로 바뀌었고, 감의 가격이 높아지다 보니 까치밥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까치밥이 사라지니 농촌이 삭막해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허전해진다.

 

 

  <  어느 감이 까치밥으로 남아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