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지리산길 제1구간 (주천-운봉)여행기

hong-0925 2010. 5. 29. 20:26

지리산둘레길여행기

 

지리산길중 아직 가보지 않은 주천-운봉의 1구간, 운봉-인월의 2구간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백수가 더 바빠 과로사한다고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다. 바래봉 철쭉꽃이 지기전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만사를 제쳐 놓고 지리산길 여행에 나섰다.

오늘( 5월 26)은 비가 온 다음이라 기온도 낮아 걷기에 좋을 것 같다. 아침 7시10분 남원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잠을 설쳐서 그런지 버스를 타자마자 잠에 빠져 있다 보니 공주부근의 금강변을 지난다. 말썽 많은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차창 너머로 모내기하는 농촌의 들녘이 펼쳐진다.

차창 넘어로 신록에 물든 산하를 감상하다 보니 남원에 도착했다. 주천행버스타는 곳을 갈려고 하니 택시운전기사가 다가와 택시를 타란다. 택시비가 버스타는 곳까지 가는 것이나 목적지인 주천까지 가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단다. 주천까지 택시비가 8,000원이란다. 큰돈도 아니고 해서 택시로 주천까지 갔다.

내가 지리산길을 걷기위해 간다니까 나에게 지리산길의 전체지도,구간지도를 준다. 걸을 때 참고하란다. 참 친절하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 지리산길 제 1코스 : 주천-운봉( 14.3km)>

시작점은 주천면의 면소재지인 외평리이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숙성치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당시는 남원부) 원달리로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응양에서 말을 갈아타고 농협 창고 뒤편에서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터거리>라 하였는데, 경치가 수려하여 감탄을 자아낸 곳이라고 전해 진다.

 

                                                 < 주천면 외평리 전경 >

 

파출소 옆에 있는 지리산길의 표시판이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 지리산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눈에 확 띄도록 크기를 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면소재지의 몇 집을 지나자 들판이다. 농로를 접하자 마늘밭과 감자밭이다. 마늘쫑이 올라오고 감자꽃이 피어 있다.

 

 또 논에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이 보이고 모내기를 한 논도 눈에 들어온다. 정겨운 농촌풍광이다. 행정교를 지나 내송마을로 향했다. 강 둑방길을 걸으면 주변의 산에는 짙푸른 소나무군락과 연초록의 활엽수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을 뽐낸다. 산간지역의 공통적인 특징을 지닌 좁은 강에는 수량이 많지 않다.

 

내송마을은 30여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들녘에는 모내기를 하기위해 남편은 트럭터로 쓰레질을 하고 부인은 트럭터가 지나간 뒤에 고무래로 논을 고르고 있다. 산쪽으로 올라가면 밭에서 풀을 뽑는 노부부가 보이고, 할머니가 혼자서 도라지의 어린새싹을 돌보고 계시다. 새까만 얼굴에 주룸 진 얼굴에 깡마른 체구를 보니 안쓰럽다. 나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의 어머니도 밤낮없이 농사일을 하였으니 저 모습이었겠지.... 가슴이 찡해 온다.

 

내송마을과 회덕마을을 잇는 해발 580m인 구룡치를 넘어야 하는 산길로 이루어진 옛길(4.2km)로 접어든다. 초입에서 70대 전후로 보이는 노부부 20여명이 때를 지어 지나간다. 일행 중 한사람이 주천면 소재지가 보인다며 다 왔다고 소리치는 것을 보니 운봉에서 역방향으로 걸어오는 모양이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분들 같다.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도 친구들과 같이 산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구룡치로 향하는 산길 초입에 서어나무 숲에 개미정지라는 쉼터가 있다. 쉬지 않고 오솔길을 오르는데, 골자기 왼쪽에 큰 바위가 눈에 뛴다. 혹시 불상이나 글귀가 있나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까이 가서보니 가공한 흔적이 전혀 없다. 사람의 손이 다치 않아 다행이다.

 

흙길이요,활엽수 숲길이요,오솔길이요, 돌계단길이요,산을 올라갈수록 소나무숲길이요,산책길에서 등산길로 변해가는 길을 걷다 보면 지금은 흔적만 남은 솔정자터가 나온다.

 

솔정자는 20여년 전만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던 곳이란다. 전설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한다.

아까시아 꽃향기,보라색의 붓꽃, 수백년 풍파에 지쳐 한 팔이 부러진 소나무, 근원의 아름다운 지리산 능선과 구름이 연출하는 비경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특히 산을 올라 갈수록 소나무군락이 전개되고 나무가 굴고 크고 멋지다.

지리산길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구룡치는 주천면의 여러 마을과 멀리 달궁마을에서 남원 장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 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구룡치를 장길로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 15일) 이 지나고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길을 보수해서 이용해 왔는데 지금도 예전의 보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구룡치를 넘으니 서서히 내려가는 평탄한 길이기 때문에 걸으면서 집에서 준비해간 백설기 떡과 비스켙을 먹으니 시장기가 가신다. 편안한 마음으로 흙길을 걸으며 자연을 감상해 본다.

 

귀에는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나뭇잎소리, 바람소리, 지저기는 새소리가 들린다. 코로는 산에서 피는 들꽃향기, 나무에서 피는 꽃향기, 산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다. 눈으로는 나무에서도 예쁜 흰꽃이 들어온다. 아름다운 풍광이다. 마음이 편안하다. 즐겁다.

 

자연을 감상하며 나무 숲길로 이루어진 옛길을 거의 다 내려 갈 때 쯤에 멋있는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소나무 밑에는 지나가는 나그네가 쌓은 듯한 돌탑이 있다. 지리산길 안내목에 “사무락다무락”이라고 쓰여 있다.

 

사무락다무락은 사망(事望)다무락(담벼락의 남원말)이 운율에 맞춰 변천된 것으로 보이는데,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무사함을 빌고 액운을 막아 화를 없애고자 지날 때 마다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여자 4명이 소나무를 감상하고 있다.

산길을 내려가면 천막을 치고 커피,라면,파전,막걸리등을 파는 쉼터가 있다. 아침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고 왔으니 또 라면을 먹기가 싫어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사무락다무락에서 본 여자일행이 들어오더니 파전과 막걸리를 시키고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떠들어 댄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신작로를 조금 걸으니 회덕마을이 나온다. 회덕마을은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와서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볏짚으로 엮은 지붕과는 달리 지붕이 급경사를 이루어 졌다. 억새초가집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밤에 초가집지붕에 손을 넣어 새를 잡아 구워 먹던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집이 거의 사라져 아쉽던 차에 초가집을 보니 반갑다. 이집은 희소가치도 있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주었으면 좋겠다.

노치마을로 가는 길옆에 비닐하우스가 있기에 무엇을 심었나 궁금하여 들어가 보니 상추를 재배하고 있다. 논두렁길을 지나 농로를 걸으며 벼 심은 논에 비료를 뿌리는 농부와 농사 이야기도 하고, 마늘밭 둑에 핀 노란꽃을 감상하며 걸으니 노치마을이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가 있으며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다. 노치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한 마을이다. 비가 내려 빗물이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그리고 동쪽은 운봉읍이고 서쪽은 주천면으로 한마을에 2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한단다.

 

마을 초입에 양옥집과 정원이 돋보인다. 연못에는 한포기의 연꽃이 피어 있고 물고기가 놀고 있다. 너무 아름다운 집이기에 외지인이 지은 것 같아서 동네사람에게 집주인에 대해 물어보니 집주인은 외지에서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 내려와서 집을 짓고 살면서 포크레인일을 한다고 한다. 나는 고향이 대덕연구단지에 편입되어 없어지고 머릿속에만 고향이 있다. 외지에서 돈 벌어 고향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다니 그 사람이 부럽다.

 

또한 마을 뒷산에 눈에 확 띄는 소나무숲이 있어 마을로 들어가는 중간에 노치샘이 있다. 물맛이 좋아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이 물통에 가득 담고 산행을 한단다. 나도 물통에 물을 가득 담고 소나무군락지로 가니 아름드리 소나무 4그루가 우뚝 서 있다. 소나무밑에는 마을 사람들이 당산소나무를 모시기 위한 돌제단이 있다. 소나무의 품위를 보아 마을 사람들이 당상으로 모시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뒷산은 백두대간 등산길이 있고 삼국시대에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다.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로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노치마을을 뒤로하고 가장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가장마을로 가는 길에는 비닐하우스와 감자밭이 많고 논두렁을 지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하교길에 논두렁을 걸으며 우렁이를 잡던 생각이 난다.

 

덕산저수지를 끼고 도는 질매재를 지나 소나무군락을 이룬 야산을 오랐다 내려가다 보면 길옆에 화려하게 상석으로 장식한 가족묘역이 나온다. 규모면이나 시설면에서 너무 지나칠 정도로 허세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음택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산을 내려 와서 가장리로 접어 들었다. 가장리는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란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가장교를 지나 제방둑길을 걷다 보면 논에서 뜬 모를 다시 심는 여농부가 보이고, 농약을 치는 살포기의 괭음이 들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검은 구름이 지나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를 맞으며 마을길로 들어서니 마당에 잡풀이 무성한 빈집과 곧 쓸어 질것 같은 집에 장작을 가득채운 빈집이 보인다. 마음이 무거워 진다. 농촌경제가 좋아져 농촌이 살기 어렵다고 도시로 떠는 사람이 없기를 바래본다.

마을내에 있는 밭에서 상추를 뜯고 있는 농민에게 “ 금년 기후가 나빠서 상추시세가 좋지요”라고 말을 걸었다. 농민은 경기가 안 좋아서 고기를 적게 먹어 상추소비도 잘 안 되어 가격이 낮단다. 운봉은 상추주산지라고 한다. 상추가격이 좋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허브밭을 가꾸는 농민에게 판매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군에서 수매해 준다고 한다. 행정마을에는 감자,마늘,더덕,복분자,허브등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

 

또한 행정마을에는 서어나무 숲이 있다. ‘제1회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곳으로, 수백년된 아름들이 서어나무가 줄지어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곳이다.

 

행정마을을 지나 신작로 건너편에 운봉목공예공방이 있어 가보니 문이 굳게 닫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제방길을 걸어 서부지방산림청의 남원 양묘사업소 포장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이팝나무,산사나무,마가목,고추나무등의 흰꽃, 검불근 단풍나무,꽃이 지고 흰머리가 된 할미꽃등을 구경하였다.

 

예전의 영화에서나 볼법한 70년대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 운봉 읍내 거리로 들어가 종점인 운봉농협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다. 14.3km를 5시간 30분 걸려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