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녁 봄기운과 꽃향기에 취한 지리산 숲길
홍성필
자유인의 행복을 느끼고 왔다. 남녁의 봄기운을 맞고 싶어서 작년 가을에 이어 두 번째 지리산 숲길을 찾았다. 4월 3일 갑자기 가고 싶어 5일 함양행 첫차인 8시 20분 버스표를 예매했다. 출발당일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쪘다. 아침에 약속이 있는 날은 잠이 일찍 깨는 것이 다반사다. 평소보다 아침식사를 일직하고 7시에 집을 나섰다.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시간여유가 40분이나 되었다.
커피한잔을 들고 휴게실에 앉아 있으니 옆자리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중절모에 양복을 곱게 입은 80대 노신사가 아들집에 왔다가 귀향하는 모양이다. 아들내외가 마중 나와 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시아버지와 50대로 보이는 며느리의 대화 내용이 내 귀에 번쩍 띄었다.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봉천동 고모는 할 얘기 다 하고 그때그때 화를 푸는데, 아버님에 비해 어머님은 너무 참고 사셔서 속으로 문드러지고 병나서 일찍 돌아 가셨잔아요...... 아버님 농협으로 부쳐 드릴테니 필요하신 것 하세요. 아버님,아버님하면서 친근감 있게 시아버지와 대화하는 며느리가 참 좋게 보였다. 노신사도 나와 같이 함안행 버스를 탔다.
내 옆에 탄 사람은 함안이 고향이며 한식차례를 지내러 내려가는 60대 후반의 은퇴자였다. 지리산 숲길을 가기 위해 마천면 금계를 간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었다. 함양까지 가서 금계행 버스를 갈아 타고 갈려고 한다니까 함양에서 내리지 말고 마천까지 가서 그곳에서 갈아 타는 것이 좋단다.
3시간에 간다는 버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사고가 크게 났기 때문에 경부선으로 돌아가는 관계로 1시간이나 연착하여 12시 30분경에 마천에 내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내리자 마자 식당으로 들어가 6,000짜리 김치찌개를 시켰다. 껍질과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많이 넣고 끌여서 그런지 아주 맛있고 다른 반찬도 맛있다. 또 시키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밥을 2그릇을 내 놓는다. 1그릇하고 약간 더 먹었다. 앞으로 걸으면 에너지가 많이 소비될 것 같아서 오래간 만에 과식을 하였다.
금계행 버스는 방금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1시간 20분후에 있단다. 택시을 타고 갈려고 하니 택시기사가 개인일보러 타지에 갔기 때문에 오늘은 이용할 수 없단다. 오늘 걷을 구간은 제4구간인 금계 - 동강 이다. 금계에서 백송사까지는 작년 가을에 걸었다. 그래서 오늘은 의중마을부터 걸으면 되는데 여기서 의중마을까지는 2km정도 된단다. 그래서 걸어 가기로 하고 오후 1시부터 걷기 시작하였다.
우선 작년 가을에 걸었던 4구역의 백미인 금계에서 백송사까지의 숲길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숲길은 옛날 사람들이 절로 가던 길이다. 산길을 걷기 시작하여 얼마 안 되어 당산쉼터가 있다. 큰 느티나무3그루와 그 밑에 쉴 수 있는 나무널판이 있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쉬었다가 발걸음을 재촉하면 시누대 군락지가 있고 안내판도 있다.
옛날에 칠선계곡과 엄천강 근처의 마을은 절에 기대어 살았던 사하촌(寺下村)이었다. 이 길은 사하촌 사람들이 절을 찾아가던 길이다. 이 길은 선조들이 불공드리러, 산나물이랑 약초캐러, 땔감하러 산을 오르기 위해 석축을 쌓고, 바위를 쪼아 계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금계에서 칠선계곡입구에 있는 추성마을과 서암정사와 백송사까지 이스팔트길로 잘 정비되면서 이제 흔적만 남았다. 지리산 숲길로 다시 태어난 이 길은 오래된 숲과 돌계단까지 옛길에서 만나는 오랜 정취가 더욱 향기롭다. 순레꾼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약 2km 올라가면 서암정사가 나온다. 창건한지 얼마 되지 않지만, 미타굴,극락전과 칠선계곡을 마주하고 있어 경치가 좋다. 또 굴속에 부처님이 모셔 있는 것이 특이하다.
벽송사부터 소나무심터까지는 미개통 구간이다. 당초에는 개통했는데, 순레꾼들이 개인 소유의 고사리,도라지등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 땅주인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서 4월 2일부터 의중마을을 경유하는 새로운 길을 내었다.
오늘 순레를 시작한 의중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620년이나 되고, 높이가 22m, 둘레 6.4m인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다. 군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삼일에 풍년과 마을의 평온을 비는 당산목이다. 당산목 왼쪽방향으로 올라가면 의중마을이 나온다. 의중마을회관 옆에 정자가 있다. 내 눈에 바로 들어온다. 농촌사랑 1사1촌 자매결연사업으로 농협중앙회의 지원을 받아 2006년에 지은 편의시설이다. 잘 활용되길 기원해 본다. 작년 가을에도 본 적이 있는 땜건설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돌담에 붙어 있다. 어느 것이 옳은 일인지.....
마을을 벗어나 엄천강쪽으로 내려 가다보면 강 건너 산에서 큰 불사가 진행 중이다. 산에 붙어 있는 큰바위를 조각하여 부처님을 만들고 있다.
작년가을에 와서 본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언제 완성될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순레길이 산속으로 들어 간다. 소나무숲길이다. 아스팔트길과 시멘트길을 걷다가 흙과 낙엽길을 걸으니 발이 편하고, 마음까지 편해진다. 수 년만에 활짝 핀 진달레를 직접 보았다. 가까이 본 진달레꽃, 자연이 빗어낸 색이 너무 아름답다. 감히 사람은 체색할 수 없는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엄천강변길로 접어든다. 지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흐르는 물도 많고, 유속도 빨라 물소리도 유난히 크다. 눈이 많이 내렸으니 금년에는 대풍년이 들겠지. 농민에게 풍년기근의 고통은 없어야 될텐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소나무 숲길은 끝나고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순레길은 오른쪽 방향이다. 그런데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용류담을 노치고 가기 쉽다.
용류교 왼쪽 암자를 지나 강변 바위길을 50m정도 가면 큰 바위와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인 괴암기석 그리고 검푸른 소(沼)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리산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세만큼 바위 여기저기에 수많은 글자가 세겨져 있다.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 강대수, 점필재 김종직, 탁영 김일손, 일두 정여창등의 이름이 보인다. 역사성은 있는지 모르지만 자연을 훼손한 것 같아 아쉽다는 느낌이다. 사진도 찍고, 비경을 감상하면서 쉬어 가기 좋은 곳이다.
다음 목적지인 송전산촌생태마을을 향해 순레길을 다시 걷는다. 지금 도로확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는 아스팔트길로 햇볕이 내려 쬐는 오늘 같은 날씨에는 이 구간이 가장 걷기 힘들다. 위안을 삼는다면 엄천강과 주변산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다. 송전(세동)마을에 도착하여 쉼터 민박집아주머니의 말에 20분이면 간다는 세진대(洗塵臺)를 가기로 했다. 원래는 벽송사에서 산길을 따라 세진대를 거쳐 송전마을을 오갔다. 이 길이 끊기므로 송전마을을 커쳐 가야한다. 세멘트도로인 임도를 한참동안 힘들여 오라 가니 오른쪽에 멋있고 기품이 있는 소나무와 큰 바위가 눈에 뛴다.
다시 길을 걷는다. 송전마을 회관을 지나 충효비도 보고, 검은비닐로 멀칭을 한 밭도 보이고, 괭이로 밭두렁을 내는 농민도 만난다. 벌써 무엇을 심었느냐고 질문하자, 고추를 심기위해 두렁을 내고 멀칭을 한다고 한다. 고추모를 이식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미리 멀칭을 해야 잡풀이 나지 않는 단다. 70평생 농사지으며 고생한 생활을 반영하듯 얼굴에 주름살이 푹 페어 있다. 논밭 여기저기에 발효퇴비를 쌓아 놓거나 뿌린 것을 보고 농민들이 유기질비료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엔 산길 옆 외딴집에서 40대의 젊은 농민을 만났다. 3년전에 서울에서 귀농했단다. 처음 귀촌했을 때 지역농민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고, 심지어 이용당하는 일도 있었단다. 이처럼 귀농이 어렵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정도 농촌생활에 적응되었단다. 곶감을 만들고, 블루베리를 재배하고 있으며, 민박을 한다. 명함을 내게 건네며 이곳 곶감이 맛있으니 내년에 많이 주문해 달란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꼬불 꼬불한 산길을 걷고 낮은 고개를 넘으니 앞이 탁 트인다.
금계-동강코스를 약 5시간 걸려 끝났다. 민박집을 찾으니 음식점을 겸영하는 민박집이 하나 있다. 어쩐지 장사속인 것 같고, 정이 안 간다. 마땅한 민박집이 없다. 아직 해가 남아 있으니 동강-수철 코스쪽으로 더 걷기로했다. 농로길을 걷는데, 밭에는 벌써 마늘과 상추가 제법 컸다.
할머니의 안내로 집에 가보니 조금은 지저분하고, 벽과 천장이 도배도 하지 않고 황토만 바른 사랑방이다. 아궁이에는 소죽을 쑤기 위해 장작이 타고 있다. 방도 뜨끈뜨끈하다. 소죽을 주기위해 끓인 물로 세수하고 발을 닦고 쉬고 있는데, 밥상이 드러 온다. 청국장찌개,김치,무우말랭이등 세가지 반찬에 밤,팥등을 넣은 잡곡밥이다. 반찬은 없지만 밥이라도 많이 먹으라고 고봉밥을 주신다. 또 아궁이에 고구마 2개를 구어 먹으라고 주신다. 농촌의 인심이 느껴진다. 특히 내가 자란 시골집의 사랑방하고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은가. 정겹다. 몸을 지지라고 담요도 없이 얇은 이불만 있다. 바닥이 너무 뜨거워 몇 번 잠을 깼다가 잠들곤 했다. 또 오랜만에 꼬꼬오하는 새벽 닭울음소리를 들으니 정감이 간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볍다. 황토방의 효험인가 보다.
할머니께서 아침6시에 아침식사를 하라고 밥상을 차려 왔다. 어제 저녁반찬에 미역국이 추가되었다. 맛있게 먹고, 숙박비로 30,000원을 드리고 6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마지막 코스인 동강-수철구간을 걷는다.
농로와 아스팔트길을 3km쯤 걸어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산청,함양 양민학살피해자의 묘역과 추모탑등 시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희생자들게 목례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여기서부터 산행이 시작된다. 상사폭포를 향해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올라 간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찌기찌기 찌기찜하고 울어대는 새소리, 새싹의 풋내음, 진달래,산수유,야생화의 꽃향기,봄을 재촉하는 바람소리, 소나무에서 내품는 피톤치트, 낙옆을 밝는 촉감,눈에들어오는 풍광들을 온몸에 느끼며 천천히 놀며 쉬며 올라 간다. 지리산은 수목원이요,화원이다. 시상(詩想)이 떠오를 것 같은,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구간이 지리산 숲길의 맥미이다. 해발 340m지점에 상사폭포가 있는데,이 폭포에도 남녀의 못다 이룬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상사폭포 위쪽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며 어렸을때의 농촌생활등등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지리산 숲길을 걷는 것은 참 잘한 것같다. 행복감이 밀려 온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 산길을 따라 올라 가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는 공사가 진행중이라 포크레인소리도 들리고, 탐프차가 흙을 실러 나르는 것도 보인다. 깊은 산중에 개인 소유의 한약재배단지도 크게 조성되어 있다. 계속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쌍재가 나온다. 고개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동재로 발걸음을 옮겨 계속 걷는다. 참나무숲길을 한참 올라가면 지리산 숲길중 가장 높은 해발640m지점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사방이 확트여 있어 동쪽에는 아름다운 왕산과 필봉산을 조망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봉우리를 볼 수 있다. 가슴이 확 뚤린다. 시원하다. 낙옆을 밝으며 산길을 내려가면 고동을 닮았다는 고동재가 나온다.
임도길을 꼬불꼬불 따라 3.6km을 걸으면서 진달레,산수유화,야생화,백목련화,버들강아지,나무새싹 그리고 새들을 보고,사진도 찍으며 걸으니 벌써 최종목적지인 수철리의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5코스인 동강-수철 구간 11.9km을 약 4시간에 완주했다.
산청행버스가 방금전에 출발하여 다음에는 12시에 있다니 1시간 20여분의 여유가 있다. 동네 논뚝에서 쑥을 뜯었다. 동네아저씨가 다가와서 어디서 왔느냐고 말을 건다. 자기는 67살이고 곱추 장애인이란다. 자기부인은 맹인이고 부인을 생각해서 처가동네로 와서 살고 있단다. 산나물,약초 캐고,수석,기형목을 채취하여 파는 등 고생고생해서 논 밭을 사고, 새집도 짓고, 딸 3명을 고교까지 가르쳐 시집보내 잘살고 있단다. 자기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착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단다. 착하게 살아서 축복을 받는가 보다. 여행길에서 인생공부를 했다. 그분께 고맙다.
산청 5일시장을 구경하고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무사이 왔다. 이번 1박 2일 지리산 숲길 걷기에 78,000원을 쓰고 즐거움, 기쁨, 환희를 맛보고, 인생공부를 한 뜻 깊은 여행이었다.